너무 급하다.

세상이 너무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때때로 내가 따라잡기에도 버거울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마음도 언제나 급하다.

급한 관계, 급한 일처리…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그렇게 급하지 않은 것 같다.

내 인생중에 모든게 끝날 것처럼 급한 마음으로 선교에 나서는 이들을 본다.

그 들은 그만큼 빨리 지칠 것이다.

내가 먼저 그들과 동화되어 그들이 내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러지 못한 단적인 사건들이 종말론이지 않을까?

종말론은 2천년전부터 계속 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도 끝은 아니다.

끝날때 까지 끝난게 아닌것 처럼. 우리도 끝을 바라보지만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믿음을 지키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동성애에 관한 짧은 글

동성애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서구유럽으로 부터 미국으로 거쳐 아시아로 퍼져나가고 있다.

아마도 세상은 인터넷이라는 도구로써 생각의 공유가 빨라진 이유이기 때문이리라 생각되어진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에 정리해보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동성애가 무엇인지 부터 생각해보기로 한다.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문자적 의미로서는 아마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사랑을 육체적 문제로 바라볼 때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리라.

육체적 관계가 사랑이라는 논리가 진리일 경우 동성애는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사랑은 남녀간의 사모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지며 지속적으로 함께 있고 싶어하며, 서로의 육체까지 탐하는 과정까지를 사랑으로 생각 할 것이다.

이에 대한 결과로써 아이가 생기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가정을 이루게 되며 인류 보편적인 결과로써의 가문 혹은 가족 관계가 이루어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대대로 이어질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불임(?) 가정을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문제가 초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너의 자손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을 약속하신다.

그 약속을 바라본다면 병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나만 살고 끝날 인생이 아니라면 동성애를 다시금 고민하는 것이 어떨까?

사라져야 보이는 사람들

사라져야 보이는 사람들 이란 교회에서의 청년을 말한다고 한다. 교회 내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고 우리 교회엔 청년들이 없네 라고 말하다가.. 사라지면 아 그 청년 어디 갔어? 참 책임감도 없구만 이라는 말로 혀를 차곤 한다.

우리 청년들을 보면 어른들이 자라던 시절의 청년이 아님을 보게된다. 20대인 그들 얼굴에서 벌써 50대의 찌든 모습을 보게되고 갇혀버린 사고 속에 누군가를 단죄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된다.

슬프다 이 모습이 우리 어른들이 물려준 모습이지 않은가? 희망을 이야기하지않고 절망만을 말하고 있는 세상과 금수저 흙수저로 날 때부터 희망을 물려줄수 없는 시대를 사는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 삶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성공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며, 부가 사람의 잣대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교회조차 그런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너무 슬프다.

교회가 버려야 할 말 우선순위는 성공이다.

국정화

내가 자라며 배운 교과서는 국정교과서였다. 그 때 배우며 제일 이해가 안가며 어려웠던 과목이 사회, 윤리, 역사 였던듯 하다. 내가 가진 상식으로 맞는 답을 찾는것이 윤리여야 할터인데 너무나 낮은 점수로 간첩이냐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 때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제 역사 국정화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너무나 많은 다양성을 받아들이려 했던 지도자들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수준은 그렇지 못한데.. 다시금 돌아가려는 이 때. 어쩌면 단순화 시키려는 지도자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다시한번 깨우치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되어진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갇힌 사고가 얼마나 어려운건지. 그 후 대학이란 공간에서 한없이 열려버린 이데올로기들을 정리할 길이 없어 다시금 길로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찌.. 지금 길에는 대학생이 없다. 열린 비판도 없다. 닫혀버린 사람들의 아우성 뿐…